무더운 홍주에서




우리가 홍성에 갈 줄이야. 채원이가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던 곳에 말이야.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다고, 곧 새로운 프랜차이즈 카페나 패스트푸드 점이 들어온다며 들떠서 말하는 친구를 두고 우리는 낄낄댔지. 스무 살 때 처음 안 이후로 육년 만에 셋이 모여 여행을 갈 때 행선지가 홍성이 된 건 어쩌면 예정됐던 건지도 몰라. 양양에 가려다 상황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한 것도 말이야. 바다를 보지 못하니 계곡 물이라도 볼 요량으로 우리는 홍성으로 갔잖아. 채원이는 우리가 홍성에 오는 게 설렌다 했지만 나와 청은이는 아름다운 경치라던가,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도 같아.

가기 전 이야기를 나눌 땐 무척이나 설레기만 했는데. 홍성으로 가는 기차에 겨우 올랐을 때, 나는 차라리 놓쳐버릴걸 하고 생각했어.

이촌에서 용산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었지만, 배차간격이 커서 나는 기다린 지 이십분 만에 지하철에 올랐어. 그때 너희들에게 문자를 보냈잖아. 기차 놓칠 것 같다고. 시계를 보면 초조하기만 한데, 나는 자꾸 시계를 확인하고 열차가 어디 있는지 보고. 무려 십분 넘게 지하철이 늦게 들어왔어. 기차는 6시 25분인데, 지하철을 6시 18분에 탄 거야.

용산역에 내려서 막 뛰었어. 놓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놓쳐버리면 어쩌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인파 때문에 좁은 통로는 꽉 막혀서, 난 제대로 뛸 수도 없어서 욕을 하고 짜증을 내면서,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연신 내뱉고 사람들을 밀치면서 그냥 뛰었어. 내가 내린 곳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곳은 왜 이렇게도 멀던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타야할 곳으로 달려갈 때 나처럼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더라. 그제서야 뭔가의 안도감이 느껴졌달까. 나 혼자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건 아니구나.

이미 출발 예정시각이었어. 무궁화호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나와 같이 뛰었던 사람들은 간신히 올라타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를 찾았지. 타자마자 오초도 안 돼 기차가 출발했어. 용산역에서 기차를 탄 건 처음인 것 같아.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홍성역에 내렸지. 밤에 우는 벌레들 소리만이 조용한 정적을 깨는 곳이었어. 기차역 바로 앞에 펼쳐진 너른 들판의 캄캄함과 터미널로 내려가던 길 매미와 귀뚜라미가 뒤섞여 우는 소리를 나는 잊지 못할 거야. 편안해지던 마음을 아직 기억해. 그 때까지도 숨이 차서 나는 터미널 뒤로 가서 담배를 태웠어.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며. 너희들은 이미 도착했다고 문자를 했지만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야만 했어. 그날 밤 담배가 떨어졌을 때 채원이가 이참에 내게 끊어보라 했지만, 그렇다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할지도 몰라. 불안을 견디는 수많은 방법 중 이게 한 가지란 건 애석한 일이지만.

너희와 마주했을 때 얼마나 낯설던지. 만나자마자 깔깔거리며 웃었던 걸 생각하면 다행히 들키지 않은 것 같아. 오지 말걸, 집에 갈걸 하는 생각 너머로 내던 웃음과 불안을 감춘 채 이것저것 맛있어 보인다고 떠들었지. 표정을 풀면서. 우리의 나름 첫 여행인데, 내가 망칠 수는 없잖아. 모듬 초밥, 마감 세일을 하던 치킨, 매운 컵라면 두 개, 술을 많이 못 마시는 청은이의 망고주스, 어제 과음한 내가 마실 헛개차, 맥주보다 분위기 내기 좋은 로제와인 한 병, 혹시 아쉬울까봐 밀 맥주 한 캔까지 넣고 나는 갑자기 케이크가 생각이 난거야. 우리의 오늘에, 나의 오늘에 괜히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서. 홍성의 대형마트는 그리 크지 않아서 작은 케이크는 팔지 않았어. 찾아보니 십분 정도 거리에 제과점이 있어서 걷기로 했지. 짐을 나눠 들었는데 결국 내 손에 아무것도 없었어. 허리와 무릎을 핑계 삼아 그랬던 거 미안해.

가던 중에 또 다른 제과점을 발견한 덕분에 우리는 치즈 케이크를 살 수 있었어.  작은 조각 케잌에 초 주는 걸 아까워해서 기분이 무척 상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며, 케이크를 발견했음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나왔어. 결국에 난 초를 세 개 얻었고. 요샌 그래. 어딜 가서도 사소한 일에도 얼굴 붉히게 되고 양보하기 싫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사소하지 않아서 그렇겠지?

채원이네 어린이집으로 택시를 타는 길에 우리 홍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잖아. 그 택시 기사님, 홍성 얘기에 흥분하시며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어. 나는 그제서야 채원이가 왜 그렇게 홍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았어. 이곳 사람들은 고향을 사랑하는 거야. 난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이 싫은데, 어렸을 적 살았던 보은은 사랑해.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 시골 살던 우리집 비닐하우스와 살구나무,  집 뒤에 있던 삼년산성과 자주 가던 법주사, 여름에 항상 가던 속리산 계곡물, 옆집 아주머니의 작은 농원과 별것 아닌 것들도 모두 사랑스러웠던 곳이었어. 내가 만약 보은에 살았더라면, 고향을 자랑하기에 바빴겠지 생각하면서.

우린 그때 홍주라는 지명에 대해서도 들었잖아. 일제 강점기에 홍주에서 홍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에 화가 났고 슬펐어. 왜 그들은 어디에서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나. 김좌진 장군, 한용운 시인 등 널리 알려진 위인들의 고향이 두려워 일본인들은 지명을 바꿨다고 채원이는 설명했어. 택시 기사님은 조금 다르게도 알려주셨지만 잘 기억은 안나. 하지만 홍주라는 지명을 되찾아야만 할 것 같아.

가로등도 뜸한 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돼 어린이집이 나타났어. 기사님은 우리가 내리는데, 여긴 유치원. 하셨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잔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하셨겠지. 어린이집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었고, 생각보다 조용해서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어. 산티아고를 걸을 때 순례길 사이사이에 뜸하게 있던 알베르게가 생각이 나는 거야.

배를 거의 곯다시피 하고 도착한 길이라 들어가자마자 음식을 풀었어. 나는 땀이 무척 많아 끈적한 몸을 조금 씻었고. 찬 물밖에 안 나왔지만, 대수롭지 않았어. 시골은 귀찮게 살아야한다고 그랬잖아. 방은 후덥지근했지만 에어컨을 켜니 금세 시원해졌어.

라면이 익는 동안 와인 컵을 씻었어. 로제 와인은 조금 시원해야 맛있어서 냉동실에 넣어두려했는데 냉장고였고, 우리는 미지근한 와인을 한참 후에 따랐지. 짠을 하고서 조금 마시다 말고 라면과 초밥 치킨을 차례대로 동내기 시작했어. 평소 같았으면 나는 와인 한 병으로도 모자랐을 텐데 여전히 숙취 때문에 그리고 전날의 부끄러움 때문에 술이 도무지 들어가지 않았어. 라면 국물이 술보다 맛있었던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 그 때 너희가 했던 말 기억해? “다원이가 술을 안 마시니까 우리랑 좀 맞네.” 술이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때 청은이에게 전날 밤의 부끄러움에 대해 털어 놨는데, 마음이 좀 가벼워진 것 같아.

배가 부르고 채원이가 먼저 눕자 우리도 나른해졌어. 나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 얼굴 맞대서 놀고 싶었는데 너희는 핸드폰만 만져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어. 하지만 괜찮았어. 이제 나와 다르다 해서 다그치지 않으려 노력중이야. 왜냐면, 너희 역시 그럴 것임을 알기에.

이 때쯤 필요한 게 케이크였지. 별 거 아닌 날에도 케이크에 촛불 꽂고 소원 빌면 괜히 특별한 기분이 드는거 너희도 혹시 느껴봤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랬거든. 지나간 애인들과의 기념일, 여행이 끝나는 날, 새 출발을 해야 하는 날 등등. 너희와 첫 여행이기도 했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고.

가위바위보에 진 너희가 내려가 와인과 맥주 그리고 케이크를 갖고 올라왔어. 우리는 다락방으로 갔지. 채원이가 가장 좋아한다는 공간. 생각보다 덥지 않아 다행이었어. 밑에 있던 방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좋았거든. 나는 지나간 그 분위기를 사랑해. 케이크에 촛불을 켰고, 사진을 몇장 찍었고 나와 채원이는 맥주를 청은이는 망고주스를 잔에 따랐어. 그 때 나는 소원을 빌었고.

있지. 소원 비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멋진 일인 것 같아. 길 가다 무슨 탑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근처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 올려야 돼. 내가 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야. 세상 모든 게 나를 위해 힘 써줄 것만 같은 느낌. 아무튼, 뭘 빌었냐고 물었지? 내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집중해서 비는 모양새가 이상하게 보였을 지도 몰라. 그때 난, 잊는 힘을 길러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는 말 비슷한 걸 속으로 되뇌었어.

근래 지나간 일들 생각에 많이 혼란스러웠어. 한동안 괜찮다가 왜 요새 그러는지. 과거의 애인들은 다시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이 나. 상처 받은 것, 후회할만한 것, 서로가 나쁘게 굴었던 행동같은 게 자기 전에도 걷는 중에도 밥먹을 때에도 물밀 듯 머리에서 쏟아져 나와. 그리고 그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나 만났던 사람들도 같이 생각이 나면 나는 내가 싫어지고 미워지고 작아져서 견딜 수 없는 거야. 다행히 가족에 대해선 울컥하고 죽고 싶었다가도 괜찮아질 때가 많아. 우리 모두 숨기고 싶고 어디에도 말 못할 이유 하나쯤은 안고 사는 게 가족사라고 생각해서 더 아픈 것들도 견딜 만 한 것 같아.

그런 생각들 때문에, 요새 나를 짓누르는 그 하찮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나는 홍성에 오기 싫었어. 너희를 만나도 달라질 게 없는 것 같아서. 혹시나 내가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게 싫어서. 예전에 감정을 토해내던 나를 감당해주던 너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외로웠나봐. 채원이가 다락방에서 내려갈 때 웃기지만 가지말라 노래를 불렀던 것도, 법원 근처 카페에 갔다가 걸을 때 같이 가자고 징징거렸던 것도. 괜히 너희와 있으니까 더 아이가 되는 것 같았어. 혼자 많은 걸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락방은 더워져 우리는 내려왔고, 술은 그대로 남았지. 나는 가만히 있는 게 싫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고 잠을 일찍 자긴 아쉬워서 빙고를 하자고 한 거야. 채원이는 먼저 잠들었지만 청은이 너와는 일곱판의 빙고를 했지. 동기 이름, 후배 이름, 유럽의 국가, 한국의 지명, 전공 과목으로. 웃긴 게, 나 전공 과목 쓰면서는 기억했던 것도 전 애인들과의 일이었다. 진짜 뭐 이런 기억력이 다 있나 싶어. 그 시간에 교수님이 나한테 해준 말씀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그런건 까먹었으면 좋으련만.

두시가 좀 넘어 빙고도 마치고, 자다 깬 채원이가 이불도 펴줘서 금세 잠에 들었지. 여름의 해는 뜨거웠고 빨리 올라서, 방은 아침 일찍 더워졌어. 씻고 준비를 할 때 홍성과 안산 일대에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는 메시지가 왔지. 가장 더운 날이었어. 37도를 웃도는. 그래도 우리는 소를 보러 가려고 집을 나섰어.

볕은 뜨거워도 시골길 산책은 좋았고, 나는 소의 큼직한 눈망울에 눈물이 다 날 것 같았어. 동네 산책을 끝내고 간 식당에서 육회 비빔밥을 먹으려 했는데, 냉면을 시켰잖아. 나는 채식을 지향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많은 모순적인 사람이니까, 소가 자꾸 생각난다고 무의식적으로 말해서 내심 미안했어. 그래도 채원이가 데려간 밥집은 ‘두리두리 방글방글 둥글둥글’이라는 가훈이 붙어져있는 시원하고 맛있고 정겨운 시골 식당이라 좋았어.  

채원이 동창이 한다는 곳은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는 카페였지만 더워서 택시를 탔고, 카페에서 나와 터미널에 갈 때도 택시를 탔지. 셋이니까 택시 타는 것도 망설임 없고, 얼마나 좋던지. 수원 가는 기차와 안산 가는 버스를 두고 고민하던 나는 끝까지 결정하지 못해서 결국 기차는 놓치고, 버스는 애매해서 너희들이 타러 간 서울행 차표를 끊었어. 사실 너희가 가고나자 갑자기 너무나 서글픈 거야. 그래서 바로 티켓을 사서 버스에 올랐었어. 놀래켜줄 생각에 두근거렸어.

채원이 자리 통로 건너 창가 쪽 뒷좌석 사람이 맨발로 의자에 발을 올리고 있길래 그냥 채원이 옆에 앉았어. 창가를 좋아하고, 앞좌석을 좋아하지만 그냥 앉았어. 멀미가 심한 나는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 나는 괜한 것들에 예민해서 대중교통에서 누군가와 살이 닿는 것도, 뒷자석 사람이 툭툭 발로 미는 것도, 껌 씹는 소리도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니까. 가는 길에 기분이 상하고 싶지 않았어.

너희와 헤어지고 안산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후회에 관한 단편소설을 읽었어. 지나간 것들은 왜 그렇게 되었나,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미련한 후회에 대해서. 청은이가 날 부르던 별명이 갑자기 생각나네. 후회왕 하다원. 그 별명을 긍정하고 부정했던 날들이 떠오르네.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이렇게 살 사람인지도 몰라. 이전보다 많이 덜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후회하고, 미련을 갖고, 지나간 기억에 집착하고 그것들에 짓눌려 우울해하는 사람인지도 몰라. 전날 먹은 술의 여파와 부끄러움에 당분간은 절대로 술은 입에도 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언젠가 또 취할지도 몰라. 지난 시간 나는 그렇게 살았으니까. 다만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내 의지로도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걸, 그렇게 견뎌낼 수 있다는 걸 너희들 덕분에 조금씩 배웠던 것 같아. 그렇게 바뀌어가는 나를 알아주는 너희였잖아. 그런 날 조급해하지도, 타박하지도 않고 기다려주고 견뎌줬던 날을 기억해. 서로 너무나 달라도, 그래서 가끔 기분이 상해도, 나는 너희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집으로 오는 길, 홍성에 가는 기차에 올라타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너희와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시간을 견뎌내는 힘이 생긴 것 같아. 지난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무더운 홍주에서의 날들을 기억할게.




2018년 7월










© 2020 Dawon 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