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향, 영광 (Nov, 2018)


















불갑 

 







지붕 낮은 버스 정류장에는 노인이 젊은이보다 많았다. 영광행 버스에 올라탄 승객들도 그랬다. 구수한 사투리로 전화를 하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이들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굴비와 모시떡 장사 하는 가게들로 빼곡했다.




아담한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물에서 바로 이어져있는 전통 시장의 생선가게에서 풍겨 오는 거였다. 잊고 있었다. 서해 바다에서 싱싱한 굴비를 건져내는 도시에 내가 왔다는 것을. 계절마다 바다를 봐야 했던 내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 와서도 보러 가지 않는 건 처음인 것이다.




디귿자로 생긴 버스 정류장은 시장 길을 가운데 두고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통로를 천천히 걸어 시내버스를 타러 향했다. 각종 이름 모를 생선과 해산물이 길 위에 정렬돼 있었다. 서울에선 가장 큰 수산물 시장마저 현대식으로 바꾸는 중인데, 이곳에서 만나는 수산물 전통 시장이 반갑기 그지없다. 언젠간 여기에 다시 찾아와도 좌판에 얼음 펼쳐 놓고 생선 널어두는 풍경을 볼 수 없을 때가 올까 생각하니 이방인일 뿐인 내가 괜스레 서운하다. 상인들은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생선 얼마요 툭툭 건넨다. 나는 생선 가게를 지나치다 떡집에서 멈추어 모시떡 다섯 개를 샀다. 마침 식사를 하려던 참인 떡집 아주머니를 앞집에서 부른다. 이천 오백 원을 건네니 이천 원만 받으시곤 열려 있던 내 가방에 넣어주었다.




산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일곱 대 쯤 있다. 두 시간에 한 대 간격이라 시간을 잘 맞춰 버스를 타야 한다. 다행히 이십 여분 뒤에 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영광군 작은 터미널 구석구석 쓰여 있는 옛 글자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마을버스는 아주 작았고 마을로 들어가는 사람들 네 다섯만이 탔다. 종점까지 가는 관광객은 터미널에서 나 하나  뿐이었다.




낮은 집들, 너른 논밭, 지는 낙엽 사이 가장 많이 보이는 건 모시떡 가게라 시장에서 사온 다섯 개짜리 떡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점심을 거른 터라 버스에서 포장지에 쌓인 떡을 두어 개 먹고서 허기를 달랬다. 버스는 삼십분 쯤 달려 종점에 닿았다. 불갑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갑사. 오늘의 종착지이자 내가 머물 곳.




사실 나는 두 시간이나 늦었다. 미리 종무소에 연락해두었지만 그래도 바쁜 발걸음을 더 재촉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저녁 공양 시간이 다섯 시, 버스에서 내리니 네 시 사십분 쯤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울 줄 알았던 불갑사는 걸어서 한참이었다. 도량으로 들어가는 차를 발견한다면 생애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오토바이 한 대 보이지 않았다. 해질녘이 다 되어 절로 들어가는 사람도 나 혼자였다. 절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잰걸음으로 걸었다. 여기 저기 절로 올라가는 잔디밭 곳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밤, 감, 사과를 바닥에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소풍 나온 사람들은 잔뜩 붉어지고 노랗게 물든 단풍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풍광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눈에 담지도 못하고 나는 절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외투를 한 겹 벗었다. 합장하고 들어서니 도량의 적막함이 나를 반겼다.




옷을 바꾸어 입고 바로 공양간에 갔다. 늦지 않게 공양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양간에서 일 하는 보살님이 국 대신 무 조림, 신 김치, 콩나물, 취나물, 시금치를 비롯한 나물 반찬들을 한가득 내어 주었다. 무엇 하나 아쉬운 반찬이 없어 동그란 접시 넘치게 담았다. 절에서는 밥 먹는 것도 수양이라 한단다. 아무 말 않고 밥알 하나하나 꼭꼭 씹어 삼킨다. 허기지고 허전했던 속이 따뜻하게 불러온다.




오늘 산사에서 머무는 이는 없었다. 덕분에 저녁 공양을 할 때도, 도량을 거닐 때도 조용히 혼자였다. 백제시대 최초의 절이자, 남아있는 절 가운데선 가장 오래되었다는 불갑사.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된 탓에 지금은 영조 때 재건된 대웅전을 비롯해 있는 몇몇 건물들만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지내는 방에서 문 열고 몇 걸음만 걸으면 대웅전이었다. 저녁 예불이 있는 대웅전엔 나와 스님, 그리고 이 불갑사에 다니시는 분 이렇게 셋이었다. 나는 신실한 불자는 되지 못하여 예불 드리는 법을 잘 모른다. 그저 스님이 무릎을 굽히고 절을 하고 일어날 때를 잘 맞추려 애 썼다. 옆에서 있는 분은 무슨 근심이 있는 모양인지 절을 하고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난 법구경을 이해하지도 못하나 가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가만히 읊조리며 절이라도 마음 다해 드렸다. 그 중 대부분은 나를 위한 절이었다.




절에선 해가 지면 할 게 없다. 방으로 돌아와 뜨끈하게 데워진 바닥에 누워보았다. 명상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쉽지가 않았다. 온몸이 노곤하고 늘어졌다. 졸음이 몰려오는데 그냥 자긴 아쉽기도 했다. 명상은 포기하고 사진기를 들고 밖으로 나서보았다. 산사는 밤이 되면 낮과 달리 유난스레 추워지기 때문에 목도리도 둘렀다. 절에 있지만 나는 조금 두려웠다. 도시에선 느끼기 어려운 적막한 어둠 탓이다. 산책을 하고 오는 스님을 마주치기가 멋쩍어 멀리서 합장을 하고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법당은 불이 다 꺼졌고, 길가에만 가로등이 훤하다. 공양간에서는 아직 보살님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재잘재잘 이야기 소리가 문 넘어 들려온다. 시계를 보니 여덟시인데 깜깜하고 인적도 없어 마치 새벽녘 같았다. 두려움을 뒤에 두고 불빛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서있었다. 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별에 잠시 감탄했다. 우리는 얼마나 불필요한 불빛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가.




일찍 눈을 붙여 보았는데 곧 잠에서 깼다. 일정한 간격으로 쿵, 쿵, 소리가 들려왔다. 옆방에서 벽이라도 두드리나 싶었는데, 옆방엔 아무도 없었다. 어디 물어볼 곳도, 도움 청할 곳도 없었다. 찬바람 맞으며 문 밖에 잠시 앉아 있다가 들어와도 소리는 여전했다. 이젠 천장에서도 들려왔다. 산사의 어둠이 갈수록 무서워지려한다. 옷장에 있는 불교 서적과 잡지를 뒤적이다 핸드폰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고 음량을 최대로 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렴풋이 쿵, 쿵 소리가 다시 들리지만 속으로 양을 세어 본다. 내일 네 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에 가야한다. 나는 자야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편히 잘 수 있을 줄 알았던 도량에서 뜻밖의 불청객을 만났다. 쿵, 쿵, 소리는 절을 떠나올 때까지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쥐가 뛰어 다녔는지, 방과 방 틈 사이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는지,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만난 보살님에게 말해보아도 금시초문인 모양이었다. 의문은 가시지 않았으나 그날 나는 악몽 없이 잘 수 있었으니 그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새벽예불은 꼭 드리고 싶었다. 도시에 살면 네 시 까지 깨어있을 순 있어도 일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왕 온 김에 이곳의 시간에 나를 맞추고 싶었다. 잠은 설쳤으나 깰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정확히 네 시였다. 반야심경을 외우며 목탁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뜨인 것이다. 귓가에서 바로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는 아무 소용 없었다. 산사의 시간은 해 지기 전부터 시작한다. 틀림없는 네 시부터 새벽 예불이 시작된다. 나는 누워서, 오 분만 일찍 눈을 떴더라면 생각했다. 목탁 소리가 너무나도 가깝다. 잠도 이미 달아나버렸다. 가만히 앉아 목탁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내려두기로 했다. 밤하늘 수놓았던 별은 짙은 구름에 자취를 감추었고, 싸늘한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예불에는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엊저녁 하려다 못한 명상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휴가를 내고 머나먼 영광의 오래된 산사를 찾아온 이유는 별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지쳤고, 쉼이 필요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적당한 탈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그중에 찾은 게 절이었다. 내 몸 있는 곳이 곧 도량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선하고 강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도착했을 때부터 마음을 비워내 보려 했으나 번번이 허사로 돌아갔다. 그런 내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전에도 절을 찾아갔다가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갔던 덕분이다. 기대를 내려두고 가만히 새벽 소리를 듣다 보니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새벽 예불은 꽤 길었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겼다. 그 사이에 장대 같은 비가 잠시 왔다가 가시고, 땅을 축축이 적셨다. 예불 소리가 끝나자 마음 놓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나는 혼자만의 꼿꼿한 시간에 놓여 있었다. 




어둠이 걷힐 무렵, 여섯시가 되어 아침 공양을 하러 가자 이른 새벽부터 깨 있던 보살님이 “왔어?” 하며 반찬을 갖다내 주셨다. 저 멀리 있는 할머니가 생각나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나는 저녁보다도 더 많이 반찬을 덜었다. “여기 따뜻한 물도 있어잉. 이건 두붓국.” 갓 끓여둔 보리차와 간간한 두붓국이 새벽 내 갈증을 덜어주고 몸을 데워주었다. 태어나 처음 먹는 전라도의 두붓국은 맑고도 입맛을 돋구었다. 그릇 싹싹 비우고 가져다 두었더니 보살님이 “바나나 줄까? 더 먹어, 많이 먹어라잉.” 하셨다.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을 끝내고도 일곱 시가 채 안됐다. 마음에 여유가 깃들어서인지 밤에 다 못잔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내리 두어 시간을 잠에 취했다. 그 사이 바깥엔 구름이 끼었다가 개이고, 소나기가 내리다가 해가 나곤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절에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평일이라 관광객은 어제보다 덜했지만, 사찰엔 이런 저런 도움을 주러 오는 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잠시 물을 마시며 공양간에 앉아있는데, 새까만 푸들 한 마리를 안고 온 중년의 남성분이 “강아지 좋아혀? 그럼 좀만 봐주고 있어줘요.” 하더니 내게 안겨주곤 비질을 하러 갔다. 나는 얼떨떨하게 축축한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주인과 떨어진 강아지는 내도록 낑낑대더니 그가 보일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이리 저리 뛴다. 그는 일을 조금 마치고 와서, 내가 아침 예불을 가야된다고 하자 다시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현아 알어? 가수 현아도 강아지 참 좋아하는데.” 갑자기 그는 이런 말을 건넨다. “아, 알죠.” “나가 현아 큰아버지여.” 연예계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 현아도 영광 사람인가봐요?” 하니까 그는 “태생은 서울. 근디 아버지가 영광 사람이여.” 하신다. 그리고선 까만 푸들을 데리고 “앉아” “업져” “빵” “벌서” 이런 묘기들을 보여 주시더니 자리를 뜨셨다.




아침 예불엔 나와 스님 둘 뿐이었다. 멋쩍게 나는 그의 언행을 따라해 보았다. 예불도 드리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졌다. 아침 예불도 한 시간이 이어졌고, 스님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땐 절을 했다. 스님이 예불을 마치고 문을 나섰다. 밖에서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들렸다.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절을 하고서 나갔다. 예불 드릴 땐 해가 비쳤는데, 갑자기 또 소나기가 내린다. 나는 그 동안 백팔 배를 했다. 기도 드릴 것은 따로 없었다. 나를 위해서 그저 절했다. 몇 가지 마음에 두었던 것도 나지막히 빌어 보았다. 절을 하고 나면 무척 개운하다. 옷에 땀이 살짝 배이는 그 느낌이 좋다. 온 세상이 내 몸짓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사찰 바로 위의 저수지를 조금 따라 걷고, 산책을 하다 나는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향했다. 도량을 나서기 전, 공양간에 가 보살님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제 가는겨, 또 놀러 와.” 나는 왜 눈물이 날 것 같았던지. 노년의 삶을 보내는 이들과 인사하는 일은 언제나 서글프다. 다음에 만날 때도 그가 안녕하길 바라며 나는 그 작은 체구를 꼭 안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뒤를 돌아보면 마음 아플 것 같아 앞만 보고 절에서 나왔다. 또 오라는 그 말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영광에도, 불갑에도 다시 찾으면 더 좋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애틋한 것은 마음 한편에 가만히 두는 게 더 옳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에도 종점에서 타는 이는 나 하나 뿐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일주문 앞에 잔득 쌓여버린 낙엽을 쓸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낭만이 누군가에겐 골칫거리가 되는구나. 이번에도 완벽히 도망치지 못했다. 다만 두렵고 싸늘한 밤, 따뜻하고 포근한 아침의 시간이 그럭저럭 지났다. 나는 다시 서울로 간다.


















© 2020 Dawon Ha